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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Milii Alekseevich Balakirev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Milii Alekseevich Balakirev

 

러시아의 작곡가이며 5인조의 지도자로

활약했던 밀리 발라키레프

러시아 국민악파의 중심인물이었는데요~

 

오늘은 발라키레프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

Milii Alekseevich Balakirev

(183712~ 1910529)

특징

동양적 요소와 슬라브 지역색이 강한

낭만적 이고도 개성적인 음악을 만들었으며,

1860~1870년대에 많은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한 작품을 작곡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교향시 타마라를 작곡하는 데 7,

교향곡 1번은 36, 

피아노 소나타는 무려 50년이나 걸렸습니다.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

피아노곡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

Milii Alekseevich Balakirev

 

대표작품
교향시 타마라
교향곡 1 C장조
피아노협주곡 1 F샤프 단조 Op.1
8중주 Op.3
피아노소나타 1 B플랫 단조
이슬라메이 Op.18(1869)
피아노소나타 2 B플랫 단조 Op.102
교향곡 2 D단조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

Milii Alekseevich Balakirev

(183712~ 1910529)

 

러시아 5인조의 리더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이론가, 교육자였던

발라키레프(Milii Balakirev, 1837-1910)

183712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Nizhny Novgorod)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4세 때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인해

정규음악 수업은 받지 못했습니다.

 

발라키레프가 10살 되던 때 쯤

방학 동안 당대 제일의 피아노 교수

뒤비크(Alexandre Dubuque, 1812-1898)

독일인 아이제리히(Karl Eiserich, 1770-1858)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되는데,

이때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의

서유럽 작곡가들의 음악과

글린카의 음악을 접하게 됩니다.

 

이 후 알렉산드로브스키 기숙학교

(AlexandrovskyInstitute)전학을 가게 된 그는

그 곳에서 울리비세프(AlexanderUlybyshev,1794-1858)

만나게 됩니다.

 

(울리비세프)

러시아의 대지주이며,

러시아 최초의 음악평론가이자,

모차르트의 전기를 펴낼 만큼

방대한 음악적 자료를 갖춘 서재를 갖고 있었으며,

베토벤의 연구가로도 알려져 있다.

 

발라키레프의 재능을 알아본 울리비세프는

방대한 음악적 자료를 갖춘 자신의 서재에서

발라키레프가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해줬습니다.

 

1853년 발라키레프는

곧 경제적인 이유로 잠시 음악을 멈추고

카잔 대학의 수학과를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음악에 미련이 있었던 그는

일마다 피아노 연주와 작곡 공부를 함으로써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1855년 울리비세프의 도움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되고,

그의 소개로 글린카를 만나게 되는데,

이 때 글린카에게 민족주의 음악에 대한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발라키레프는 글린카의 후계자로 통했던

다르고미즈스키(Alexander Dargomizhskii,1813 -1869)

예술전문가이자 비평가인 스타소프

(Vladimir Stasov, 1824-1908)를 만나게 됩니다.

 

(다르고미즈스키)

1856년 오페라 「루살카(Roussalka)」를 작곡하며

‘언어로 표현할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음으로 표현하겠다.’

라는 신조로 러시아 민족음악의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였다.

 

그는 글린카의 뜻을 잇고, 뒤이어 나타날

‘러시아 5인조’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때부터 발라키레프에게

젊은 작곡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1856년 처음으로 찾아 온 큐이(CesarCui,1835-1918)

1857년에는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1839-1881),

1861년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

(Nikolay Rimsky-Korsakov,1844-1908),

그리고 다음 해에 보로딘

(Alexander Borodin, 1833-1887)찾아오게 됩니다.

 

이 후 1861년 발라키레프는

스타소프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언 아래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과 함께

‘민족주의 악파’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대부분이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이 집단의 별칭은

스타소프에 의해 ‘든든한 동지’ 혹은 ‘강력한 소수’라고

번역되는 모구차야 쿠치카

(Moguchaya Kuchka)로 불렸는데,

이 후 ‘러시아 5인조’로 불리게 됩니다.

 

또한 1862년 안톤 루빈스타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맞서

무료 음악학교를 설립했고,

러시아 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베를리오즈, 슈만 등

서구의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발라키레프는 많은 음악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음악가로서의 선배인

글린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글린카 역시 민족주의와 서구의 양식을 혼용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동양적인 것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발라키레프가 처음 민속 재료들을 수집할 때,

글린카는 본인이 수집한

스페인의 민속 재료들을 제공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발라키레프는 글린카의 오페라

「황제를 위한삶」과 「루슬란과 루드밀라」에서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배웠는데,

러시아 민속 음악을 재료로

기악으로 다루는 방법들과

글린카가 베를리오즈의 작품에서 배웠던

밝고 투명한 오케스트라의 기술 및

기본적인 음악어법의 많은 요소를 배워

발전시키고 확장시켰습니다.

발라키레프에게 있어 글린카의 영향은

러시아 민속음악 기법을 사용할 때 가장 분명해집니다.

 

발라키레프는 러시아 민요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민요를 채집하여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1862년엔 코카서스(Caucasus) 지방에서 보내면서

그 지역과 조르지아(Georgia) 및 이란(Iran)

민속 음악을 기록하였으며,

후에 이 곡들은 그의 음악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866년부터 1년간

슬라브(Slavs)와 헝가리(Hungary) 민요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는데,

이것은 이 후 바르톡(Bela Bartok, 1881-1945)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모은 민속적 재료들은

정통 유럽음악의 바탕에 선법, 선율, 화성 등의

특징들로 나타나

새로운 양식의 음악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발라키레프가 민요를 소재로 작곡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향시 러시아(Symphonic PoemRussia)

이슬라메이(Islamey)가 있으며,

 

러시아 민요를 소재를 가지고 피아노로 작곡한

최초의 작품으로는

그란데 판타지(GrandeFantaisie on Russian

Folk Songs, Op.4, for piano and orchestra)

해당합니다.

 

발라키레프가 사용했던 작곡기법의 많은 부분이

러시아의 민요나 민요적 선율, 음계 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한 민요적 음계인

5음 음계(pentatonic scale)를 자주 사용하였고,

불협화음이나 한음이 동시에 울릴 때

반음에 차이를 주는 기법 등의 사용은

민요나 전례음악에서 볼 수 있는 해결 없는

비화성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로 노동요나 절기음악에서 보이는

응답 형식의 캐논기법이나 복합리듬,

보편적이지 않은 복잡한 3박 계통의 리듬이

주축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는 작품의 구조를 반복과 발전에 맞추고 있으며,

단순한 주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복잡해지는 발전 속에 보이는

통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음악은 전체를 동기로부터 발전시킨다면

러시아 음악은 짧은 단위의 선율을 리듬,

화성의 변화를 통해

반복하여 표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민요의 기초를 이루는

전음계(diatonic scale) 선법(mode)의 선율을

특징적으로 사용하며

간혹 반음계적 음계(chromaticm scale)

선율에서 나타나지만

계속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외에도 장조·단조의 변형, 넓은 음역의 사용과

자유모방으로 진행되는 다성음악의 특징도 나타납니다.

이것이 그의 작품들에 나타는

민족주의 음악에서 영향 받은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

Milii Alekseevich Balakirev

 

발라키레프의 음악은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

홀스트(Gustav Holst,1874-1934),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바르톡(BélaBartók 1881-1945),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 등

다양한 20세기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인상주의 음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은

동양의 매력에 빠져있었고,

이들에게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 또한

이국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

 

영국의 작곡가 홀스트 또한

발라키레프의 민요적 정신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홀스트는 영국 민속 음악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가

러시아 음악에 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의 작품에는 발라키레프를 비롯하여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코프스키(Piotr Tchaikovsky, 1840-1893),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적 특징들이 작품에 나타납니다.

 

이처럼 발라키레프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정신은

기존 유럽음악을 모방하는데 그쳤던

음악계를 변화시켰으며,

후에 발라키레프의 이후

프랑스, 헝가리, 노르웨이, 핀란드, 스페인 등

다양한 나라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러시아 5인조의 지도자였던

발라키레프에 대해 공부하셨죠?

 

다음포스팅에는 왕벌의 비행으로 유명한

림스키코르사코프에 대해 공부해보겠습니다.